murmuring

폐허주의자의 꿈

hyleidos 2014. 8. 28. 16:42









--- 장석주



1.

술 취한 저녁마다

 

 

몰래 春畵(춘화)를 보듯 세상을 본다.

 

 

내 감각 속에 킬킬거리며 뜬소문처럼

 

 

눈뜨는 이 세상,

 

 

명륜동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도보로 십분 쯤 되는 거리의

 

 

모든 밝음과 어두움.

 

우체국과 문방구와 약국과

 

 

높은 육교와 古家(고가)의 지붕 위로

 

 

참외처럼 잘 익은 노란 달이 뜨고

 

 

보이다가 때로 안 보이는 이 세상.

 

 

뜨거운 머리로 부딪치는

 

 

없는 (), 혹은 있는 고통의 形象(형상).

 

 

깨진 머리에서 물이 흐르고

 

 

나는 괴롭고, 그것은 진실이다.

 

 

 

 

 

2.

날이 어둡다.

 

 

구름에 갇힌 해, 겨울비가 뿌리고

 

 

웅크려 잠든 누이여.

 

 

불빛에 비켜서 있는 어둠의 일부,

 

 

희망의 감옥 속을 빠져 나오는 연기의 일부,

 

 

그 사이에 풍경으로 피어 있던

 

 

너는 어둡게 어둡게 미쳐가고

 

 

참혹해라, 어두운 날 네가 품었던 희망.

 

 

문득 녹슨 면도날로 동맥을 긋고

 

 

붉은 꽃피는 손목 들어 보였을 때, 나는

 

 

네가 키우는 괴로움은 보지 못하고

 

 

 

그걸 가린 환한 웃음만 보았지.

 

 

너는 아름다운 미혼이고

 

 

네 입가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미소.

 

 

열리지 않는 자물쇠에서 발견하는

 

 

생의 침묵의 한 부분, 갑자기 침묵하는 이 세상

 

 

비가 뿌리고, 비 젖어 붉은 녹물

 

 

땀처럼 흘리고 서 있는 이 세상

 

 

가다가 돌아서서 바라봐도 아름답다.

 

 

 

3.

무너진 것은

 

 

무너지지 않은 것의 꿈인가?

 

 

어둠은 산비탈의 아파트 불빛들을

 

완벽하게 껴안음으로 어둠다와진다.

 

 

살아 떠도는 내 몸 어느 구석인가

 

 

몇 번의 투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몇 마리 기생충,

 

 

그것이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것인가?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구석에 팽개쳐져

 

 

녹슬고 있는 기계, 이 세상에 꿈은 있는가?

 

녹물 흘러 내린 좁은 땅바닥에

 

 

신기하게도 돋고 있는 초록의 풀을

 

 

폐기 처분된 기계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murmur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14.09.02
금정산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  (0) 2014.08.29
.......  (0) 2014.08.24
요가를  (0) 2014.08.22
죽지 못해서 산다.  (0)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