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ing before getting the image

사진의 황홀함

hyleidos 2007. 12. 8. 07:18




말은 다르지만 생각은 같아!   라고 생각들 만한 그런 글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역겨울 정도로 싫다. 사진의 오리지날리티에 짓눌린 습관인지

하지만 그것은 또한 어쩔 없는 것이겠지  생각이란 것이 낡은 것인 ,…..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와 재미에 대해 누가 물어 봐서 대답하다 보면 만연체로 빠지기가 수인데,

 

롤랑 바르뜨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누군가 이미 했군! 역시 새로운 생각이란 있을 없어! “

 

이같은 사진의 재미와 황홀? 이건 사실이니까?!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잠시 위로는 된다, 아주 잠시동안

 

롤랑 바르트는 얄밉게도, 명료하게 표현하였다!

 

이렇게, 

 

광기를 택할 것인가, 분별을 택할 것인가?

사진은 전자도될 있고 후자도 있다.

만일 사진의 사실주의가

미학적인 혹은 경험적인 습관에 의해 절제되고, 상대적인 것이 된다면

(미용실이나 치과병원에서 잡지를 뒤적이는 것처럼)

사진은 분별있는 어떤 것이 것이다.

만일 사실주의가 절대적인,

말하자면 근원적인 사실주의가되어 '시간'이라는 자체의 의미를

사랑과 두려움에찬 의식으로 되돌아오게 한다면,

사진은 미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는 반전을

 

나는 마침내 사진의 황홀함이라고 부르겠다.

 

사진의 길은 그와 같은 것이다. 사진이 보여주는 광경을 완전한 환상으로 돌려, 세련된 기호에 종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서 완강한 현실의 깨어남과 마주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롤랑 바르뜨 - '카메라 루시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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