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다르지만 생각은 같아! 라고 생각들 만한 그런 글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역겨울 정도로 싫다. 사진의 오리지날리티에 짓눌린 습관인지…
하지만 그것은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그 생각이란 것이 낡은 것인 한,…..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와 재미에 대해 누가 물어 봐서 대답하다 보면 만연체로 빠지기가 일 수인데,
롤랑 바르뜨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음…
“누군가 또 이미 했군! 역시 새로운 생각이란 있을 수 없어! “
이같은 사진의 재미와 황홀? 이건 사실이니까?!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잠시 위로는 된다, 아주 잠시동안…
롤랑 바르트는 얄밉게도, 명료하게 표현하였다!
이렇게,
광기를 택할 것인가, 분별을 택할 것인가?
사진은 전자도될 수 있고 후자도 될 수 있다.
만일 사진의 사실주의가
미학적인 혹은 경험적인 습관에 의해 절제되고, 상대적인 것이 된다면
(미용실이나 치과병원에서 잡지를 뒤적이는 것처럼)
사진은 분별있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이 사실주의가 절대적인,
말하자면 근원적인 사실주의가되어 '시간'이라는 말 그 자체의 의미를
사랑과 두려움에찬 의식으로 되돌아오게 한다면,
사진은 미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는 이 반전을
나는 마침내 사진의 황홀함이라고 부르겠다.
사진의 두 길은 그와 같은 것이다. 사진이 보여주는 그 광경을 완전한 환상으로 돌려, 세련된 기호에 종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서 완강한 현실의 깨어남과 마주칠 것인가는 내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롤랑 바르뜨 - '카메라 루시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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