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ya/Maya 2026

Conventional Truth, Ultimate Truth

by hyleidos 2026. 1. 2.

 

우리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그 말은 제도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아니라, 공동체가 서로에게 빚지는 약속의 형태여야 한다.

사람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동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화국의 성립 조건이다.

누군가는 “각자 알아서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각자’가 설 수 있는 바닥이 무너지면 그 말은 윤리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나는 수행이 현실을 벗어나는 기술이라고 믿지 않는다.

현실은 도망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 통과해야 하는 밀도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마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를 조건 짓는다”는 고백에 가깝다.

고통은 마음에서만 생기지 않고, 제도에서도 생긴다.

그리고 제도는 결국 마음의 습관과 결탁해 굳어진다.

 

속제와 진제는 서로의 핑계가 될 때 가장 위험해진다.

진제를 말하는 이가 현실의 불의를 보지 못하면, 공(空)은 단단한 무감각이 된다.

속제만을 말하는 이가 마음의 구조를 보지 못하면, 정의는 쉽게 증오의 얼굴을 한다.

그래서 나는 둘을 한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바꾸는 합의는 마음을 필요로 하고, 마음의 통찰은 현실을 필요로 한다.

 

사회는 아프기 전에 합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합의는 대개 고통이 한 사람의 문제가 될 때에야 시작된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이 부서진다.

그래서 나는 자꾸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로 ‘함께’ 아프지 않고도 합의할 수 없는가.

누군가의 절망을 증거로 삼지 않고도, 서로의 삶을 최소한으로 보장할 수 없는가.

 

현실은 교묘하고,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교묘함을 이유로 멈추는 순간,

교묘한 것은 언제나 강자의 편이 된다.

나는 강자의 언어로 진제를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약자의 고통을 ‘마야’라는 말로 덮고 싶지 않다.

현실을 통과하는 진제, 진제가 스며든 속제—

그 둘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으로 남았으면 한다.

 

'maya > Maya 202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어붙은 땅에서  (0) 2026.01.01
세상을 다 껴안지 않아도 된다  (0) 202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