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더듬는 게 현재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저 하나의 순간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음이겠지…
그리고 그 유희는 지금의 나란 존재가 만들어내는 것이니 가공 된 것일 게다.
가공된…
1987년도의 강원도 홍천군 인제군 경계, 내린천을 드나들 때의 이야기이다.
87년도 이니까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내린천이 있는 살둔 산장을 갈려면… 꼬박 이틀이 걸렸다.
부산 부전역에서 밤 9시 15분 통일호 중앙선을 탄다. 좌석은 5300원 입석은 5100원이었다.
새벽 원주역에 내려 원주 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가면 대략 새벽 5시 30분경
치악산이 있는 원주의 새벽은 춥고 조용하다.
버스터미널에서 버너를 꺼내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커피를 끓인 다음 차장과 커피를 한잔 나누어
언 몸을 녹인 다음 아침 6시 첫차 하진부행 버스에 앞뒤로 맨 배낭과 몸을 싣는다.
그리고 몇 시간 버스를 달려 진부에 도착, 그때부터 버스 터미널 표 파는 아가씨를 귀찮게 해야 한다.
버스 지나갔나요, 언제 오나요? 버스오면 좀 알려 주세요. 시간 있나요? 등등
강원도 아가씨들의 억양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여간 계속해서 버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걸 주시하다가
대한 여객 내면행 버스를 탄다. 버스를 한대 놓치면 거의 하루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
당시 꼭 맞는 돈에 식량까지 지고 다니던 때라… 후후
내면행 버스를 타면 이승복 기념관이 있는 속사를 지나 이남에서 가장 높은 국도라는 운두령을 넘어
내면에 도착한다.(내면은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과 관련이 있을거다)
내면에서 이젠 창촌행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버스를 놓치면 걸어 가야 한다.
하지만 몇 번 걸어 보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말리는 이유가 있긴 있다. 좀 힘들다.
겨울엔 얼어 죽을 가능성도 있다. ㅎㅎ
이젠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사랑방 다방에서 창촌행 버스를 기다린다, 가슴 졸이며 느긋하게.
당시 56번 국도는 비포장이었다. 여름이면 먼지가 한움큼씩 날리는 길, 겨울이면 눈이 쌓여
부산으로 돌아갈 애타는 마음과 함께 발길을 몇 번이고 산장으로 다시 돌리게 했던 길이다.
허나 그 길은 90년대 초 세계 잼버리 대회인가를 한다고 포장이 되었다 한다. 간단하게
그 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나 뭐라나 그걸로 이름이 바뀐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강원도 내린천에 발길을 끓었었다. 첫사랑을 잃은 기분이랄까… 좀 묘한...
각설하고… 버스를 타고 창촌 작업장 입구 근처에서 주위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여기 내려주세요… 하고 내려서는
이제 내린천을 따라 산태극 그 길을 배낭을 매고 걸어 간다.
내린천을 따라 고갯마루를 돌면, 고갯마루를 돌아 설 때 마다 눈이 퍼붓곤 했다.
멀리 아득히 첩첩 산중의 계곡을 따라 퍼붓던 눈, 아름 다운 그 곳이 내가 태어나 자란 조국이라니...
산으로 산속으로 속으로...
눈이 퍼붓는 날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다.
어둠이 찾아 오는 저녁, 그 속을 내리는 눈은 너무나 아름답다.
고갯마루를 돌아 서며 더욱 치는 눈발에 고함을 치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 흘리고
또 고갯마루를 돌아 서며 또 몰아치는 눈발에 노래를 부르며
고갯마루를 돌고 돌면.
멀리 산장의 불빛이 보인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나저나 강물이 얼었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절앳제 위에 서는데, 뜨거운 숨결이 얼어 붙은 손을 핱는다.
깜짝 놀라며 쳐다보니 백구다.
이 놈 지난번 떠나 올 때 멀리까지 따라 오지 말라며 돌을 던지고 또 던지고 해서
돌려 보낸 건 다 잊었으려나… 백구야 하고 안아본다. 하얀 백구, 너무나 예쁘다.
나는 눈 속에 애들이 낯에 놀다 두고 간 비료 포대를 찾아서 절앳제를, 썰매를 타고 백구와 함께 내려간다.
다시 사람들이 적은 아니 없는 오지로 돌아 왔다.
나의 첫사랑 강원도 내린천, 존재를 눈뜨게 해 준 나의 사랑.
왕성골 커다란 돌빼나무에게 후 재 애들 데리고, 아내 데리고 다시 돌아와 살겠다고 약속했건만…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
리쉬케쉬 히말라야 보리수에다 또 무슨 약속을 해야 하나……
훗날 깡통 하나 들고 아무 가진 것 없이 다시 돌아와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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