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anyaar 3164

flower 382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微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戀愛)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밧지 안너냐. 너에게도 님이 잇너냐. 잇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긔루어서 이 시(詩)를 쓴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서문', 회동서관, 1926. * 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

naanyaar/flower 2015.10.06

무을 297

이제 다 왔다고 말하지 말자 천리 만리였건만 그동안 걸어온 길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행여 날 저물어 하룻밤 잠든 짐승으로 새우고 나면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동안의 친구였던 외로움일지라도 어찌 그것이 외로움뿐이였으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었고 아직 가지 않은 그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리라 바람이 분다 아직 가지 않은 길 – 고은

korea/무을 2015.10.04

무을 294 - 百鬼夜行(백귀야행)

왜 이렇게 열렬히 사랑하는지 당신 잘 이해 못 하시는군요. 그건 제가 죽어가는 존재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뿐인 삶으로, 매순간 제 죽음으로, 당신 전부를 사랑하기에 그토록 뜨거운 겁니다. 당신 만날 때마다 매번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건 당신이 너무나 소중하단 뜻입니다. 단 하나 목숨으로 당신 우주처럼 사랑하고 싶지만 그에 못 미칠 때 절망합니다. 당신 또한 단순히 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제게 삶의 가장 빛나고 화려한 생명의 순간을 죽음으로 주신다는 걸 압니다. 청춘이 죽고 삶이 죽어지지 않는 거라면 우리 사랑 이토록 슬프고 간절하진 못할 겁니다. 아시겠지요? 전 매순간 제 죽음으로 당신 삶을 불태우듯 사랑합니다. . 죽음을 사랑합니다 김 하 인

korea/무을 2015.09.30